오늘은 국어영역 공부에 있어서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왜 불편하냐면,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지식이 많아야 수능 국어영역을 잘 풀 수 있다.”이기 때문입니다. ㅎㅎㅜ
수능 국어영역 사교육계는 지금 사후적인 reading skills를 가르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글의 ‘형식적 구조’라든지, PS, QA, CE등의 ‘내용간의 관계’들을 열심히 가르치고-배우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다음과 같은 수능 국어 본문을 배운다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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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역학에 따르면, 물체의 크기에 관계없이 초기 운동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일정한 시간 후의 물체의 상태는 정확히 측정될 수 있으며, 배타적인 두 개의 상태가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20세기에 등장한 양자 역학에 의해 미시 세계에서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들이 공존할 수 있음이 알려졌다.
(2018학년도 9월 평가원 #27~3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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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수능 국어 사교육에서는 제시된 정보들 간의 관계를 사후적으로 비교해주는 방식으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가령 이렇게 말이죠.
“처음에 고전 역학이 나왔지? 그리고 뒤이어 양자 역학이 나왔어. 너희들은 고전 역학이랑 양자 역학을 비교하면서 글을 읽어나가면 돼. 고전 역학은 배타적인 두 상태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양자 역학은 미시 세계에서 상호 배타적인 상태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본 차이가 있네.”
띠용???
저런 설명을 들으면 학생이 글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 설명에는 “알맹이가 없”어요. 저렇게 가르치는 것은 학생들을 수동적인 학습자로 만들고, ‘이미 이해한 내용’을 받아들이게만 만듭니다. 수능 시험현장에 갔을 때 중요한 것은 오히려 학생이 ‘자기만의 힘으로, 스스로’ 글의 정보를 위와 같이 이해할 수 있는지인데도요.
그럻다면 수험생이 저 첫 문단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정답은 지식입니다. 수험생은 ‘배타적’이라는 개념을 알아야만 위의 글을 읽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고전 역학 |
양자 역학 |
-배타적인 두 개의 상태가 공존할 수 없다고 본다. |
-미시 세계에서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들이 공존할 수 있다고 본다.
|
배타적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배타적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남자라면, 그는 동시에 여자일 수는 없겠죠. ‘남자’라는 성별과 ‘여자’라는 성별은 서로 배타적입니다.
‘배타적’이라는 개념을 알고 나서야 수험생은 고전 역학과 양자 역학이 실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혼자만의 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위 글 전체의 주제는 ‘상호 배타적인 상태의 공존’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반하는 현상이 물리학에서도, 논리학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험생은 ‘배타적’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모르는 상태로는 결코 글을 스스로 이해하고 고득점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떤가요, 불편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글에서 ‘배타적’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었는가?
아니오. 글 어디에서도 ‘배타적’이라는 개념을 설명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이 정도는 ‘상식’ 혹은 ‘당연히 알아야 하는 지식’이에요.
즉, 수능 시험에 출제되는 제시문은 ‘모든 정보’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출제된 제시문이 제공하는 정보와 적절히 통합하여 글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독자가 가진 지식
|
+ |
제시문이 제공하는 정보 |
= |
글의 의미 이해! |
한철우(2011) 교수는 자신의 저서 『거시적 독서지도』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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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는 그가 읽을 글과 관련된 지식이 부족할 때 글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독자가 자신의 지식과 글 속의 지식을 통합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이해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독서의 과정에서 이를 도와 주는 것은 도입 단계에서 글의 내용과 관련된 지식을 보충해 주거나 관련 지식과 경험을 활성화시키고 내용을 예측하게 하는 활동 등이다.
(중략)
독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작용이 독서 지도와 독서 방법에 시사하는 방향은, 독자가 독서의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예측하고 추론해야 한다는 것이며, 지도 과정에서는 그러한 학습 상황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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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큰일입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은 많은 국어강사들의 강의를 듣고 교재도 보았지만,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비문학 지문이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지요? 위 글은 그 원인으로 ‘지식의 부족’을 정면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지식의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은 정말 쉽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글’을 많이 읽고 공부하며 지식을 쌓으면 됩니다! 이때 ‘다양한 분야의 글’은 지금까지 쌓인 수능 기출문제들이 되겠지요. 여러분들은 지식을 쌓기 위해 기출문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헌데 문제는, 지식이 당장 모자란 학생은 기출문제로 공부하는 것조차 힘들다는 것입니다. 기출문제가 너무 어려워요. 지식을 쌓기 위해서 기출문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식이 너무 없어서 기출문제 공부도 어렵다는 것이 문제적인 상황이죠. (마치 회사들이 요즘 경력직만 채용하는데,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 경력이 있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보는 것 같군요.)
그래서 저는 『과정중심 수능국어』라는 이름의 교재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과정중심 수능국어』에서는 제시문을 ‘읽기 전’에 독자들에게 적절한 지적인 자극을 주어, 수험생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읽기 전 활동’을 통해 글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지식을 보충 받거나, 일상생활에서 듣고 봤을 법한 경험을 떠올려 보고 수능국어 제시문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세요!
이제 결론을 내려봅시다.
국어 ‘재능러’들은 수능 국어를 “그냥 읽고 풀면 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모두 마찬가지예요. 수능 국어영역에서는 거창한 ‘스킬’이라든지, ‘문제풀이법’이 정말 필요 없어요.
오히려 여러분들은 글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이 없어서,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예요!
글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갖추고 나서, 여러분들도 “그냥 읽고 풀면” 문제가 다 풀리는 경험을 해 보세요!
여러분들은 reading skills가 없거나 모자라서 수능 국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reading skills는 학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면 되는 것입니다.
글을 이해하는데 훨씬 중요한 것은 지식입니다.
한교수님과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을 공유하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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